팔랑귀의 진로선택 (1)
처음 입학한 대학교는 시각디자인과였다.
지금도 예전에도 귀가 거의 셀로판지만큼 얇은 나는, 진지한 고민의 결과가 아닌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그것도 나와 매우 앙숙이었던, 내 인생 최악의 인간 중 하나인!)의 한 마디로 내 꿈을 결정해버리는데,
"너는 주얼리 디자이너를 하면 참 잘 할것 같아"
앗 그래요?
생각해보니,
중학생, 질풍노도의 시절, 야자와 아이의 만화에 매우 큰 영향을 받던 마음만은 반항아였고,
이대앞 악세사리샵들을 뒤지며 그 당시 6만원이라는 거금의 비비안웨스트우드 반지를 구매할까 말까..
일주일을 고민하던 악세사리 덕후였다.
(야자와아이와 비비안웨스트우드의 연관성은 말 안해도 알겠지..?)
(참고:야자와 아이의 작품들)
그래 너로 정했다!
초3때부터 소나무처럼 흔들림 없는 패션디자이너라는 꿈이 왜 그리 쉽게 바뀌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백화점에 걸린 수많은 옷들을 볼 때마다 저게 다 팔리겠냐며, 패션디자이너 돈 벌수 있겠냐며
영어선생님이 낫지 않겠냐는 걱정을 하던 우리 엄마의 본의아닌 세뇌 때문이었을까?
야심차게 금속공예과에 모두 몰빵하고, 마지막 안전빵으로 지원한 시각디자인과.. 여기만 합격할줄은 정말 몰랐다.
팔랑귀의 진로선택 (2)
시각디자인과는 정말 적성에 잘 맞았다.
포스터를 만들고, 명함을 만들고, 늘 당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퇴한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다.
서울이 아닌 '수도권'에 위치한 그 학교는
2/3은 기숙사 또는 자취, 나머지 학생들은 서울까지 왕복 세시간, 많게는 네 시간의 거리를 감수해야 했다.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선배와 동기들이 통학러를 조금 배려해주면 좋았으련만,
왜 단체행동은 전부 오후 7시 이후에 있는건지..
7시에 모여서 과방과 강의실 청소등등을 겨우 끝내면, 우사인볼트에 빙의해서 뛰어야 겨우 막차를 탈까 말까 한 시간이었다.
이런 일이 최소 주1회 이상 일어났고, 시간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에 돌아온 답변은..
"너네는 집에서 부모님 케어 받으면서 편하게 학교 다니잖아. 우리는 자취해서 우리가 다 알아서 해야돼. 왜 우는소리야?"
..?
통학거리가 3시간밖에 안된다는 이유로 기숙사에 탈락한 내 잘못이요,
만 19살 딸래미를 어떻게 10평 원룸에서 혼자 살게 하냐는 보수적인 부모님을 둔 내 잘못이요..
지금도 예전에도ㅋ (나를 향한)불의를 참지 못하는 나는 그 길로 휴학신청을 해버렸다.
(와중에도 차마 자퇴는 하지 못하고..지금도 예전에도 안전주의자다..)
그렇게 시작된 미술학원 강사+반수생활.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미술학원 원장님의 한마디로 진로가 결정되는데,
"홍대 산업디자인과 나와서 자동차 디자이너 하면 캬~ 멋있지않냐?"
와씨 개쩐다..
산업디자인과 너로 정했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 산디과는 못갔지만 제품디자인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좋은 동기들과 함께,
연애도 열심히,
술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타먹으며,
그렇게 평탄하게 멋진 제품디자이너가 되나 싶었으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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